고운 모래밭을 보면 맨발로 걷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곤 합니다. 아마도 우리 마음속 어디쯤에 태곳적 그 시절처럼 땅에 직접 두 발을 딛고 살고픈 열망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우리는 지구에서 살고 있지만 땅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채집과 수렵에 의존하던 태곳적에는 맨발로 먹거리를 찾아 헤매다 피곤하면 그대로 땅바닥에 앉아 쉬다가 누워 잠을 잤지만, 지금은 포장된 도로 위에서 신을 신고 걷고 소파에 앉아 쉬다가 침대에 누워 잠을 잡니다. 농사를 지으면 그래도 흙을 만질 기회라도 있지만, 도시에 살면 그런 기회도 쉽지 않습니다. 생애 전체를 봐도 직접 땅과 접촉하며 보내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십수 년 전에 미국에서 시작된 ‘맨발’ 열풍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진 것입니다. 물론 맨발 걷기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전에도 공원 한쪽에 맨발로 걸을 수 있는 자갈길을 만들어 놓기도 했으니까요.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때는 공원에서 산책하다 그 길을 만나면 신을 벗어들고 조심스레 걷던 것이, 이제는 들과 산으로 나가 자연 속에서 걷는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때는 맨발로 걸으면서 지압 효과 또는 맛사지 효과를 말했지만, 이제는 만성적인 질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 효과를 위해 수많은 사람이 맨발 걷기에 나서고 있고, 급기야는 맨발 걷기 열풍으로 인해 자연이 훼손되고 있다는 뉴스 기사도 올라왔습니다. 도대체 맨발 걷기가 무엇이고, 실제로 어떤 효과가 있기에 그럴까요?
맨발 걷기, 어싱 또는 그라운딩
십수 년 전, 우리보다 먼저 맨발 걷기가 유행한 서구에서는 맨발 걷기를 ‘어싱(Earthing)’ 또는 ‘그라운딩(Grounding)’이라 합니다. 우리 말로는 전기 설비에서 사용하는 단어 ‘접지’ 바로 그것인데, 단순하게 땅에 접촉하는 것을 넘어 ‘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관련 논문은 ‘어싱’ 또는 ‘그라운딩’을 ‘맨발이나 맨손 또는 다양한 접지 시스템을 통해 피부를 지구 표면에 직접 접속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즉, 맨발 걷기 뿐만 아니라 가전제품을 접지하듯 어떤 장치로 우리 몸을 땅에 연결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이렇게 하면 태양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에너지와 비타민을 제공하는 것처럼, 땅도 우리에게 전자 형태의 에너지를 제공하는데, 여기에 건강상의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싱(그라운딩) 방법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어싱(그라운딩)은 주로 ‘맨발 걷기’인 듯합니다. 하지만 어싱에는 맨발 걷기(맨발 달리기) 외에 다른 방법도 있는데, 이름 그대로 우리 몸을 ‘접지’하는 방식입니다. 어싱은 크게 ‘실외 어싱’과 ‘실내 어싱’으로 나뉩니다.
1 실외 어싱
어싱(그라운딩)은 우리 몸을 땅에 연결 짓는 것이므로 오염되지 않은 흙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습니다. 노출된 흙에 우리 몸을 직접 닿게 하면 됩니다.
- 맨발 걷기 또는 맨발 달리기: 어싱의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맨발 걷기 또는 맨발 달리기입니다. 말 그대로 모래밭이든 황토길이든 땅에서 맨발로 걷거나 달리는 것입니다. 물론 걷거나 달리지 않아도 됩니다. 맨발로 땅을 딛고 서 있는 것도 좋고, 맨발을 땅에 댄 채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것도 좋고, 잔디밭에 누워 두 손이나 두 발을 땅에 대고 편히 쉬는 것도 좋습니다. ‘어싱’은 걷기나 달리기가 아니라 ‘접지’니까요.
- 수영 또는 족욕: 물에 들어가는 것도 어싱의 한 방법입니다. 물은 전기가 통하니까요. 우리 몸은 그 물을 통해 땅과 연결됩니다. 강이나 호수에서 수영하는 것도 좋고, 강가 얕은 물에 맨발을 담그고 쉬는 것도 좋습니다.
실외 어싱은 걷기나 달리기 같은 운동 효과도 얻을 수 있고, 자연 속에서 쉬면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거 환경에 따라 다르고 계절과 날씨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2 실내 어싱
실내 어싱은 실내에서 언제든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접지 도구를 이용합니다. 기본 원리는 금속선을 이용해 손목이나 발목 등 노출된 신체 부위를 외부 땅에 접지한 금속막대에 연결하는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관련 상품도 많습니다. 접지패드, 접지매트, 접지담요, 접지양말, 접지밴드 등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실내 어싱은 발목이나 손목에 접지밴드를 착용한 채 자면서도 할 수 있고 거동이 불편해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체로는 맨발 걷기에서 얻을 수 있는 추가적인 운동 효과나 지압 효과는 없습니다. 운동 효과를 얻으려면 손목에 접지밴드를 착용하고 실내자전거 같은 운동을 하면 될 것이고, 지압 효과를 얻으려면 발지압매트를 이용하면 될 것입니다. 또한, 실내 어싱의 한계는 단독이 아닌 아파트 등 공동 주거 형태에서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맨발 걷기(어싱)의 건강 효과
어싱 관련 논문을 살펴보면, 건강상의 효과가 있다는 논문도 있고, 효과보다 위험성이 더 크다는 논문도 있습니다. 효과를 말하는 논문 중에는 어싱 관련 단체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연결된 논문이 많습니다. 아래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어싱의 건강상의 효과입니다.
- 기분 개선
- 스트레스 감소
- 수면 질 향상
- 피로 해소
- 심혈관 건강 향상
- 면역계 기능 향상
- 통증 감소
- 염증 감소
- 질병 치료
- 항산화 작용
맨발 걷기에 관한 다른 견해
인터넷에 올려진 맨발 걷기 글을 보면 질병 치료 체험담이 많습니다. 특히 맨발 걷기로 암과 같은 불치병을 고쳤다는 체험담이 이목을 끕니다. 이와 같은 글은 개인 블로그는 물론 공신력 있는 기사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맨발 걷기 열풍은 바로 이런 효과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싱의 효과를 의문시하는 연구 자료도 많습니다.
1 효과보다 위험성이 더 크다
어싱에서 자주 언급되는 효과는 항산화 작용입니다. 원리는 우리 몸에서 생성된 활성산소가 지구에서 방출된 자유전자를 만나 중화된다는 것입니다. 태양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에너지를 제공하는 것처럼, 지구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자유전자를 제공하는데, 접지를 통해 우리 몸에 흘러들어온 자유전자가 우리 몸에서 생성된 활성산소를 중화시킨다는 것입니다. 활성산소는 염증을 유발하고 세포를 변질시키는 등 다양한 질병을 일으키는데, 땅에서 방출된 자유전자가 그 활성산소를 중화시켜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접지의 항산화 효과]
하지만 많은 연구 자료는 접지로 인한 항산화 효과를 의문시합니다. 만약 접지의 항산화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라면 의료기관에서는 병실마다 접지 시스템을 설치할 것이고, 보건 당국에서는 무지개색 식단을 홍보하듯 집집마다 접지 시스템을 설치하라고 홍보할 텐데, 아직 그런 일은 없습니다. 참고로, 항산화 효과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항산화제 간단 정리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위험성이 더 크다]
많은 연구 자료는 맨발로 걷거나 달릴 때 자세 교정과 관절 보호 등의 효과가 있다고 말합니다. 맨발로 걸으면 신을 신고 걸을 때와 달리 보폭이 줄어들고 발 앞부분이 먼저 지면에 닿으면서 관절에 전해지는 충격이 작아지며, 그와 함께 자세 교정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효과를 위해 자연에서 맨발로 걷는 것은 자상이나 박테리아 감염과 같은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맨발 걷기 효과가 ‘접지’로 인한 항산화 효과인지, 걷기로 인한 운동 효과인지 구분하면 될 것입니다. 접지에서 오는 항산화 효과라면 맨발이어야 하지만, 걷기에서 오는 운동 효과라면 맨발이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미국 시사 저널 타임(TIME) 기사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합니다.
2 어싱 효과 또는 걷기 효과
일반적으로 말하는 맨발 걷기의 효과 중에는 ‘맨발’의 효과가 아닌 ‘걷기’의 효과도 있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걷기 등 유산소 운동은 건강에 매우 좋은 운동이고, 보건 당국에서 강력하게 추천하는 운동입니다.
걷기의 효과는 놀랍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버클리)의 자료에 따르면 날마다 규칙적으로 걷는 것은 신진대사를 돕고, 심장병과 당뇨병 등 만성 질환에 효과가 있답니다. 하버드대학교의 자료도 날마다 4400보를 걷는 사람은 그렇지 않는 사람보다 각종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41% 낮았으며, 날마다 7500보를 걷는 것이 건강한 삶을 위한 이상적인 걸음수라고 말합니다. 이렇듯 일반적으로 말하는 ‘맨발 걷기’의 효과 중에는 ‘맨발’이 아닌 ‘걷기’의 효과도 들어 있어서, ‘맨발’ 고유의 효과를 말하려면 그런 ‘걷기’ 효과를 제외해야 할 것입니다.
3 플라시보(위약) 효과
어싱의 효과를 의문시하는 또 하나의 견해는 플라시보 효과입니다. 어싱으로 병을 고쳤다는 그 체험담은 어싱 효과가 아니라 플라시보 효과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파킨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플라시보 효과 연구 결과는 상상 이상입니다. 파킨슨병 환자들에게 전혀 약효가 없는 생리식염수를 투여하면서 한 그룹에는 비싼 약(약 150만원)이라 하고 다른 그룹에는 싼 약(약 10만원)이라 했을 때 비싼 약을 받았다고 생각한 그룹의 운동 능력이 28%나 향상되었답니다. 어싱에도 이런 플라시보 효과가 개입됐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안전과 배려
맨발 걷기로 불치병을 고쳤다는 체험담도 있지만, 그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자료도 많습니다. 치료 효과가 입증되려면 그 효과가 보편적으로 나타나야 하고, 재연 가능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맨발 걷기는 좋은 운동입니다. 자연 속에서 맨발로 천천히 걸으며 느끼는 그 편안함과 운동 후에 느끼는 개운함 그리고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싱그러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 – 생각만 해도 삶이 재충전되는 듯합니다. 이 좋은 자연의 선물을 누릴 때 챙겨야 할 것은 본인의 안전과 자연과 이웃을 향한 배려입니다.
참고 자료
- Cognitive Research: Expensive seems better: The price of a non-effective drug modulates its perceived efficacy
- Journal of Environmental and Public Health: Earthing: Health Implications of Reconnecting the Human Body to the Earth’s Surface Electrons
- Sage Journals: The Risks and Benefits of Running Barefoot or in Minimalist Shoes
- TIME: Put Your Shoes Back On. Here’s the Problem With Going Barefoot
- Reuters: ‘Expensive’ placebo beats ‘cheap’ one in Parkinson’s disease: stu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