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식탁이 풍성해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전에는 이름으로만 알던 과일과 채소 그리고 음식(음료)이 올려지곤 하니까요. 그런 음식(음료) 중에 ‘뱅쇼’가 있습니다.
오늘 알아볼 내용
뱅쇼(vin chaud)와 멀드와인(Mulled wine)
뱅쇼 – 이름이 특이합니다. 하지만 원어 그대로 보면 지극히 평범하고 직관적인 이름입니다. 뱅쇼(vin chaud)는 이런 류의 음식을 일컫는 프랑스식 이름인데, ‘따뜻한 와인’이란 뜻입니다. 대개 와인은 20도 이하 온도로 마시지요? 그런데 ‘따뜻한 와인’이라니요? 와인을 덥히면 와인의 풍미를 제대로 살릴 수 없을 텐데요.
맞습니다. 뱅쇼(vin chaud)는 이름 그대로 와인을 끓여서 만든 ‘따뜻한 와인’ ‘온포도주’입니다. 이렇게 와인을 끓이면 와인 고유의 향미가 손실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뱅쇼를 만드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겨울에는 따뜻한 음료]
뱅쇼(vin chaud)는 프랑스에서 크리스마스 시즌 음료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뱅쇼(vin chaud)가 프랑스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뱅쇼는 유럽 전역에 널리 퍼져 있는데,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부릅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독일어권에서는 ‘글뤼바인(Glühwein)’이라 부르고, 이탈리아에서는 ‘빈브룰레(vin brulé)’라 부르며, 스웨덴 등 북유럽에서는 ‘글뢰그(glögg)’로 부르고, 영국과 영어권에서는 ‘멀드와인(Mulled wine)’이라 부릅니다. 이렇게 널리 퍼져 있다보니 지역에 따라 다양한 베리에이션이 있지만, 공통점은 모두 적포도주를 끓인 ‘따뜻한 포도주’입니다.
온포도주
포도주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다고 말할 정도로 그 역사가 유구합니다. 고대 수메르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등장하고, 성서에도 등장할 정도니까요. 그 포도주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이집트와 그리스를 거쳐 로마에서 꽃을 피우고, 로마 제국의 확장과 함께 프랑스 등지로 전해집니다.
뱅쇼의 역사도 로마군의 행적을 따릅니다. 지중해성 기후대 온난한 지역을 벗어난 로마군에게 북쪽 지방의 겨울은 혹독했습니다. 추위에 떨던 로마군은 평소 즐기던 포도주를 데워 마셨고, 그 온기로 혹독한 추위를 견디면서 온포도주가 감기에 좋다는 이야기도 생겨났답니다.
건강 와인 뱅쇼
뱅쇼는 중세 시대에 이르러 꽃을 피웁니다. 따뜻한 포도주가 겨울철 추위 극복은 물론 감기를 예방한다고 믿었던 유럽인들은 여기에 건강에 좋다는 다양한 향신료를 추가합니다. 하지만 당시 향신료는 고가품이어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진 자’는 귀한 향신료를 넣지만 ‘갖지 못한 자’는 형편에 따라 넣을 수밖에 없었고, 지역에 따라 선호하는 향신료도 달라 자연스레 다양한 베리에이션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건강 와인 뱅쇼는 추운 겨울 시즌 크리스마스 축제 음료로 자리매김 합니다.
아마도 우리네 수정과와 비슷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수정과가 겨울철 건강에 좋다지만, 숭늉도 귀하던 그 시절에 날마다 먹을 수는 없어도, 설날 음식 만큼은 생강에 계피에 곶감에 호두에 잣에 귀한 재료를 챙겨 장만했던 바로 그 마음 말입니다. 크리스마스는 부활절과 함께 서구권의 최대 명절이니까요.
멀드 사이다
‘향신료를 추가해 끓이는’ 멀드(Mulled) 방식은 와인에 머물지 않습니다. 영국 등 와인보다 ‘사이다’가 흔한 지역에서는 ‘애플 사이다’에 향신료를 넣어 끓인 ‘멀드 사이다’가 자연스런 현상이겠지요. 물론, 여기서 사이다는 우리가 즐기는 청량음료 사이다가 아니라 ‘사과 발효주’입니다. ‘멀드 사이다’ 역시 ‘멀드와인’과 함께 크리스마스 축제 음료입니다.
다양한 향미와 효능의 건강 음료 뱅쇼
뱅쇼는 지역에 따라 추가하는 향신료를 달리한 다양한 베리에이션이 있습니다. 베이스는 ‘적포도주’입니다. 여기에 정향, 육두구, 팔각, 계피, 생강, 후추 등 다양한 향신료와 함께 꿀이나 설탕을 넣어 끓입니다. 여기에 잠재적인 건강상의 효능이 있습니다. 이들 향신료는 항산화제가 풍부하기로 유명하니까요.
1 적포도주
멀드와인 뱅쇼의 베이스는 적포도주 레드와인입니다. 적포도주 레드와인의 건강상의 효능은 ‘프렌치 패러독스’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알코올은 건강에 나쁘다고 알려졌는데 포도주를 즐겨 마시는 프랑스인이 미국인보다 더 건강하니까요. 그 이유는 둘로 요약됩니다. 하나는 포도 껍질과 씨 모두 넣고 발효시킨 적포도주 레드와인에 레스베라트롤과 안토시아닌 등의 항산화제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적당량의 알코올이 혈관 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건강에 좋은 음주는 ‘적당량의 알코올’이며, 여기서 말하는 적당량은 남성은 하루 두 잔 이내, 여성은 하루 한 잔 이내입니다.
2 정향
정향은 후추 계피(시나몬)와 함께 세계 3대 향신료로 불립니다. 꽃봉오리를 따 말린 정향(丁香)은 그 모양이 고무래(丁)를 닯아서 정향이라 부르는데, 영어명은 클로브(Clove)입니다. 매운 맛이 강하고 방부 효능이 있는 정향은 오래된 고기의 냄새와 맛을 가리는 데 좋습니다. 풍부하게 들어 있는 항산화제는 혈압을 낮추고 콜레스테롤 수치와 혈당 수치를 낮추며 항염 작용으로 염증성 질환 치료를 돕는 등 다양한 건강상의 효능이 있답니다.
3 육두구
육두구(넛멕)와 메이스는 오랜 세월 귀한 대접을 받아온 향신료입니다. 육두구 나무의 열매 안에 있는 씨앗을 갈아 만든 향신료가 육두구(넛멕)이며, 씨앗을 감싸고 있는 붉은 색 껍질을 갈아 만든 것이 메이스입니다. 인도네시아 지역에서 나는 육두구는 예로부터 다양한 효능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리그난 카페산 등 풍부하게 들어 있는 항산화제가 심혈관 건강을 돕고, 항염 및 소염 작용을 하며, 혈당수치를 개선하고, 인지력을 향상을 돕는 등 다양한 효능으로 건강을 도울 수 있답니다.
4팔각
뾰족뾰족 별모양으로 펼쳐진 8개의 꼬투리 때문에 ‘팔각’ 또는 ‘팔각회향’이라 부르는데, 서구에서는 별처럼 생겨 ‘스타 아니스(star anise)’라 부릅니다. 중국과 인도 요리에 많이 쓰이며, 고기의 불쾌한 냄새를 제거하는 데 좋습니다. 팔각 역시 항산화제가 풍부하게 들어 있는 향신료로, 예로부터 염증을 완화하는 약재로 쓰였답니다.
5 계피
계피(시나몬)는 후추 정향과 함께 세계 3대 향신료라 불립니다. 향도 좋아 제과나 음료를 비롯해 다양한 요리에 쓰입니다. 생강과 함께 우리 전통 음료인 수정과의 주재료이기도 합니다. 계피 역시 항산화제가 풍부하기로 유명합니다. 항염, 혈당수치 개선, 혈압 안정, 감염 예방, 항박테리아, 항종양 등 다양한 잠재적인 효능이 있답니다.
6 생강
생강은 우리에게 익숙한 식재료 중 하나로, 계피와 함께 수정과의 주재료이기도 합니다. 특히 겨울이면 감기 예방 차원에서 생강차를 끓여 마실 정도로 ‘생강차’는 ‘건강차’로 유명합니다. 생강에는 진저롤과 쇼가올이라는 항산화제가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면역계 강화를 돕고, 항염 작용으로 염증성 질환 치료를 도우며, 혈압 안정과 혈당 수치를 개선 하는 등 다양한 작용으로 건강을 도울 수 있답니다.
7 후추
후추는 계피 정향과 함께 세계 3대 향신료라 불립니다. 향과 맛이 좋고 음식의 부패를 방지하는 효능 때문에 오랜 세월 귀한 대접을 받아온 향신료입니다. 후추에는 매운맛을 내는 피페린 등 항산화제가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항염, 항종양, 콜레스테롤 수치 안정, 혈당 수치 안정, 혈압 안정, 인지력 개선 등 다양한 작용으로 건강을 도울 수 있답니다.
뱅쇼 만들기
뱅쇼를 만들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베이스인 레드와인입니다. 떫은맛이 적고 과일향과 단맛이 강한 레드와인이 좋습니다. 또한, 건강 음료로 만드는 것이라면 설탕이나 꿀은 넣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끓일까 데울까
뱅쇼는 베리에이션도 다양합니다. 넣는 재료에 따른 베리에이션도 있지만, 포도주를 따뜻하게 만드는 방식애 따라 다른 뱅쇼가 되기도 합니다. 여기에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끓이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데우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알코올 함량입니다.
- 끓여 만들기
끓이는 방식은 처음부터 모든 재료를 냄비에 넣고 20~30분 정도 끓여서 만듭니다. 끓이는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포도주를 팔팔 끓이면 기화점(78.5도)이 낮은 알코올이 상당 부분 기화되어 사라집니다. 또한, 포도주의 탄닌 성분이 변질돼 떫고 쓴맛이 강할 수 있습니다. 쓴맛은 꿀이나 흑설탕을 더 넣어 잡습니다.
- 데워 만들기
반면, 데우는 방식은 모든 재료를 냄비에 넣고 약불에서 은근하게 데워 만드는데, 온도가 알코올의 기화점(78.5도)에 미치지 않도록 합니다. 이렇게 만들면 포도주의 알코올을 거의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재료 준비
기본인 적포도주 1병(750mL)을 준비하고, 함께 끓일 향신료를 준비합니다. 향신료는 입맛에 맞는 것이면 무엇이든 좋습니다. 단, 특정 향신료를 너무 많이 넣으면 그 향신료의 향과 맛이 강할 수 있으므로 조금씩만 준비합니다. 계피 스틱 1개, 팔각 1개, 강판에 간 육두구 한 꼬집, 껍질 벗긴 생강 5g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저며서(슬라이스) 넣을 오렌지 1개와 흑설탕 50g도 준비했습니다. 참고로, 흑설탕 대신 꿀을 사용해도 되며, 단맛이 강한 것이 싫거나 건강 음료로 만든다면 설탕과 꿀은 빼는 것이 좋습니다.
만들기
먼저 냄비에 와인을 붓고 설탕을 넣은 후 설탕이 녹을 때까지 끓입니다. 이때 불은 중불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설탕이 다 녹으면 불을 약하게 줄인 후 나머지 재료를 다 넣고 20분 정도 끓이고 불을 끕니다. 스테인리스 채나 거름망으로 계피 스틱과 팔각 오렌지 등 넣은 재료를 건져낸 후 잔에 따라 냅니다. 계피 스틱이나 저민 오렌지로 장식하면 보는 즐거움도 더할 것입니다.
이것이 뱅쇼 맛
멀드와인 뱅쇼는 베리에이션이 많습니다. 달리 말하면 저마다 본인의 입맛에 맞는 레시피를 갖고 있다는 말도 되고, 레시피 상관없이 그때 그때 ‘있는 재료’로 만든다는 말도 됩니다. 같은 이름 ‘김치’로 불리지만 집집마다 레시피가 다르듯, 뱅쇼도 입맛따라 갑니다. 이것이 ‘멀드와인 뱅쇼의 맛’입니다. 재료의 종류와 양을 달리하면서 본인의 입맛에 맞는 향미를 찾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