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어야 먹은 것 같다.’ 밥이 주식인 우리가 흔히 주고받는 말입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닐 것입니다. 세계 인구 약 절반이 쌀이 주식이고, 아시아로 좁히면 아시아 인구 약 90%가 쌀을 주식으로 삼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쌀은 DNA인 듯 우리 안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쌀이 문제입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잡곡에 썩어 밥을 지어 몰랐던 일이지만, 먹을 것이 풍부해지자 그 좋은 ‘쌀밥’이 우리를 아프게 하기도 합니다. 물론 쌀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분별 없고 절제 없는 선택이 문제일 테지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백미와 ‘흰쌀밥’이 왜 문제인지, 그리고 현미와 ‘현미밥’이 왜 좋은지 살펴봅니다.

백미

백미와 현미

백미(白米)는 한자 그대로 흰쌀을 말합니다. 반면 현미(玄米)는 한자 그대로 보면 ‘검은쌀’이지만 실제로는 ‘누런쌀’입니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브라운 라이스(brown rice)’라 합니다.

벼, 현미, 백미

백미와 현미는 같은 벼에서 나며, 도정 과정에서 달라집니다. 탈곡한 벼에서 왕겨라 부르는 까칠까칠하고 누런 겉껍질을 벗겨내면 누런 쌀이 되는데, 이를 현미라 합니다. 여기서 쌀겨라 부르는 미강(브란, bran)을 벗겨내면 배아미가 되는데, 쌀눈(배아)이 남아 있어서 배아미라 부릅니다. ‘흰쌀’ 백미는 미강은 물론 쌀눈도 벗겨낸 쌀로, 누런색인 미강과 배아가 모두 사라져서 흰색이 된 것입니다.

또한, 쌀은 미강을 깎아낸 정도에 따라 부르기도 합니다. 왕겨만 벗겨내고 미강은 깎지 않은 현미는 ‘0분도미’라 하고, 미강의 50%를 깎아낸 쌀을 ‘5분도미’라 합니다. 배아미는 미강의 70%를 깎아낸 ‘7분도미’입니다.

[백미, 분도미]
백미는 누런색 미강을 모두 깎아낸 쌀이므로 ‘10분도미’입니다. 하지만 크기가 다른 알곡을 한꺼번에 도정하기 때문에 크기가 작은 알곡은 덜 깎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약간 더 깎아 백미를 만드는데, 일반적으로 ‘12분도미’입니다. 미강을 덜 깎은 모든 쌀을 ‘분도미’라 부르기도 합니다.

백미와 현미의 영양성분 차이

미강과 배아가 그대로 남아 있는 현미는 현미를 백미와 다르게 만듭니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차이는 식감과 맛입니다. 현미밥은 흰쌀밥과 달리 밥알이 단단하고 거칠며 찰기가 적어 먹기 불편합니다. 게다가 흰쌀밥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맛도 그리 좋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백미에는 없고 현미에는 있는 미강과 배아 때문인데, 꾸준히 먹다 보면 오히려 밥알이 톡톡 터지는 듯한 식감과 고소한 맛이 좋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식감과 맛 외에도 영양성분 차이도 있고 그에 따른 건강상의 효능 차이도 있습니다.

영양성분 차이

현미는 백미에 비해 섬유질, 단백질, 불포화지방산, 각종 미네랄과 비타민B군 등의 영양소 함량이 더 많습니다. 아래 영양성분 비교는 우리나라 식약처 데이터베이스를 참고했습니다. 품종은 ‘전국(대표)’로 했으며, 품종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 열량: 백미 100g에 들어 있는 열량은 366kcal이며, 현미 100g에 들어 있는 열량은 357kcal로, 큰 차이는 없습니다.
  • 탄수화물: 탄수화물 함량도 큰 차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조성 비율이 다른데,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섬유질입니다. 백미 100g에 들어 있는 섬유질의 양은 약 1.9g이며, 현미 100g에 들어 있는 섬유질의 양은 약 3.9g으로, 두 배에 해당합니다. 하루 권장 섭취량으로 환산하면 각각 8%와 16%입니다.
  • 단백질: 백미 100g에 들어 있는 단백질의 양은 약 6.8g인데, 현미 100g에 들어 있는 섬유질의 양은 약 7.3g으로, 약간 더 많습니다.
  • 지방산: 백미 100g에 들어 있는 지방산의 양은 약 0.8g이며, 현미 100g에 들어 있는 지방산의 양은 약 2g입니다. 이중 우리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은 각각 0.5g과 1.5g으로 현미에 세 배나 더 많습니다.
  • 미네랄: 현미에는 철분, 마그네슘, 인, 아연, 구리, 망간 등 우리 몸에 필요한 각종 미네랄이 백미보다 더 많이 들어 있습니다. 백미 100g에 들어 있는 철분의 양은 하루 권장 섭취량의 2%지만 현미에는 8%가 들어 있고, 마그네슘은 각각 10%와 39%로 현미에 거의 네 배나 들어 있으며, 망간은 각각 30%와 83%로 거의 세에 해당합니다.
  • 비타민: 쌀에는 비타민E와 비타민B군에 속한 비타민이 들어 있는데, 백미보다 현미에 더 많이 들어 있습니다. 백미 100g에 들어 있는 비타민E의 양은 하루 권장 섭취량의 4%에 해당하지만, 현미에는 9%로 두 배가 넘습니다. 또한, 티아민, 니아신, 판토텐산, 엽산 등 비타민B군에 속한 비타민도 현미에 더 많이 들어 있습니다.

현미의 특별한 건강상의 효능

현미의 건강상의 효능을 말할 때 가장 특징적인 것은 섬유질입니다. 탄수화물의 일종인 섬유질은 우리 몸이 소화하지 못하기에 그대로 장을 통과해 배출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배변과 장운동을 돕고, 프리바이오틱스로 작용하며, 혈압과 혈당 수치를 낮추는 등 다양한 작용으로 건강을 돕습니다. 그래서 섬유질을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미네랄, 비타민과 더불어 ‘제6의 영양소’라 부르기도 합니다. 물론, 섬유질은 탄수화물의 일종이지 별도의 영양소는 아닙니다.

우리의 주식 밥

고도로 도정된 백미로 지은 흰쌀밥은 상당량의 섬유질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 결과 흰쌀밥은 소화 속도가 빨라, 먹는 그대로 혈당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제2형 당뇨병 환자의 식단에서 흰쌀밥 등 고도로 가공된 곡물로 만든 식품을 빼라고 조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밥은 우리의 주식이어서 대체식품이 필요한데, 그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현미밥입니다.

문제는 혈당

현미밥을 거론할 때 섬유질과 함께 등장하는 것이 혈당지수(GI, Glycemic Index)입니다. 흰쌀밥의 혈당지수(GI)는 70 정도이며, 현미밥의 혈당지수(GI)는 55 정도입니다.

혈당지수(GI)는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당뇨병 환자 식단을 위해 만든 지표로, 우리가 먹은 음식이 혈당 수치에 얼마나 빠르고 많이 영향을 미치는지를 0부터 100까지 수치화한 것입니다. 혈당지수(GI)가 70 이상이면 고혈당지수 식품이고, 56~69는 중혈당지수 식품, 55 이하는 저혈당지수 식품으로 분류합니다. 흰쌀밥은 고혈당지수 음식이지만, 현미밥은 낮은 중혈당지수 음식 또는 저혈당지수 음식에 속합니다. 즉, 흰쌀밥은 먹으면 바로 소화돼 혈당 수치를 높이지만 현미밥은 소화 속도가 늦어 혈당에 미치는 속도도 느립니다. 그래서 건강 전문가들이 당뇨병 환자에게 흰쌀밥을 현미밥으로 바꾸라고 조언하는 것입니다.

현미밥

36% 희망 밥상

오랜 기간 약 332만 건의 당뇨병 환자 데이터를 추적 분석한 연구는 놀랄만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백미를 현미로 바꿨을 때 제2형 당뇨병 위험이 36%나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이 연구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지원으로 수행되었으며, 연구자들은 본 연구와 관련한 이해 상충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당뇨병은 대표적인 성인병으로, 듣기만해도 무거운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질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당뇨병이 우리 곁에 있고, 예상보다 빠르게 환자가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당뇨병 고위험군 인구를 포함한 당뇨병 인구는 2200만 명에 달할 정도입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3명 중 1명이 당뇨병에 걸렸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험이 최고의 스승’이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사에는 경험한 후 그 결과를 돌이킬 수 없는 일도 참 많습니다. 질병도 바로 그중 하나입니다.

직접 경험만 경험이 아닙니다. 간접 경험도 경험입니다. 슬기로운 건강 생활은 간접 경험 수용도가 얼마나 빠르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어느 날 주변에서 그리고 건강 관련 기사에서 마주한 간접 경험으로 본인의 건강을 가늠해 보고 대처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건강 생활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연구 결과가 알려주는 ‘36%의 희망 밥상’입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