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우리가 즐겨 사용해 온 말 중에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식생활이 서구식으로 변하면서 이 말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보릿고개 시절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쌀이 남아돌고, 고기 소비량이 쌀 소비량을 추월했다는 기사도 있으니까요. 모두 경제 성장 덕분인데, 그와 함께 건강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면서 이제는 쌀이나 밀을 대신할 대체 곡물을 찾는 사람도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파로(Farro)는 그런 수요를 충족하기에 충분한 곡물입니다. 파로(Farro)가 무엇인지, 어떤 건강상의 이점이 있는지 알아봅니다.

파로(Farro)

파로(Farro)는 지금의 튀르키예 남동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고대 시대에도 재배한 밀의 일종입니다. 우리는 쌀이 주식이어서 밀이라고 하면 어쩌다 빵이나 국수로 먹지만, 밀은 옥수수와 쌀과 함께 ‘세계 3대 곡물’에 속합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밀은 주로 온대 지방에서 식량으로 사용하고, 쌀은 주로 아열대지방에서 식량으로 사용합니다. 물론 우리는 온대지방이지만 쌀이 주식입니다.

파로

고대 밀 파로(Farro)

파로(Farro)는 한 가지 곡물의 이름이 아니라, 세 가지 ‘고대 밀’을 지칭할 때 사용합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고대 밀 ‘아인콘(Einkorn)’을 파로라 부르고, 어떤 지역에서는 고대 밀 ‘스펠트(Spelt)’를 파로라 부르며, 어떤 지역에서는 고대 밀 엠머(Emmer)를 파로라 부릅니다. 이런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이탈리아에서는 아인콘을 ‘파로 피콜로(farro piccolo)’라 부르고, 스펠트를 ‘파로 그란데(farro grande)’라 부르며, 엠머를 ‘파로 메디오(farro medio)’라 부릅니다. 즉, 파로는 아인콘 스펠트 엠머 세 가지 곡물을 아우르는 이름입니다.

  • 아인콘(Einkorn, Triticum monococcum): 독일어로 ‘아인(ein)’은 하나를 뜻하고 콘(korn)은 ‘곡식 낟알’을 뜻합니다. 참고로, 이탈리아어 파로(Farro) 역시 ‘곡식 낟알’을 뜻하는 라틴어 ‘파(far)’에서 유래했습니다. 아인콘은 인류가 처음으로 재배한 곡물 중 하나로 간주됩니다.
  • 스펠트(Spelt, Triticum Spelta): 중세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중요한 곡물이었지만, 지금은 건강식으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 엠머(Emmer, Triticum dicoccum): 아인콘과 함께 근동 지역에서 가장 먼저 재배된 곡물 중 하나로, 유럽과 북미 대부분의 지역에서 파로는 대개 엠머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구할 수 있는 파로도 엠머밀입니다.

파로(Farro)의 영양 성분

아래는 우리나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통곡물 엠머(Emmer) 100g에 들어 있는 영양 성분입니다.

  • 열량: 362kcal
  • 단백질: 12.77g
  • 지질: 2.13g
  • 탄수화물: 72.34g (섬유질 10.6g)
  • 지질: 2.13g
  • 철: 1.53mg
  • 망간: 128mg
  • 아연: 4.79mg
  • 니아신: 8.51mg

엠머(Emmer) 파로(Farro)의 효능

요즘 많은 사람이 건강상의 이유로 통곡물이나 고대 곡물을 찾습니다. 흰쌀과 흰밀가루가 맛도 좋고 식감도 좋지만, 급격하게 혈당 수치를 높이는 등 다양한 건강상의 문제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건강 전문가들은 통곡물을 추천하고 퀴노아나 아마란스 같은 고대 곡물을 추천합니다. 이런 곡물은 정제 곡물에 비해 섬유질과 단백질을 비롯하여 대사 작용에 필요한 각종 미네랄과 비타민, 그리고 우리 몸에서 활성 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제도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통곡물 엠머 파로도 그런 곡물 중 하나입니다. 아래는 엠마 파로의 특별한 성분과 잠재적인 건강상의 효능입니다.

1 섬유질이 풍부합니다.

엠머 파로 100g 중 72.34g이 탄수화물이고, 이 중 10.6g이 건강에 좋은 섬유질입니다. 우리나라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한 ‘2020 한국인 영양소 섭취 기준’에 제시된 성인 남성의 섬유질 하루 충분 섭취량은 25~30g이며, 성인 여성의 섬유질 하루 충분 섭취량은 20g입니다. 파로 100으로 여성은 섬유질 하루 충분 섭취량의 절반을, 남성은 35~42%를 섭취할 수 있습니다. 섬유질은 우리 몸에서 혈당과 혈중 콜레스테롤을 조절하는 등 다양한 작용으로 건강을 돕니다. 섬유질의 건강상의 효능에 관해서는 섬유질의 효능 글을 참고하세요.

2 단백질이 풍부합니다.

엠머 파로는 섬유질뿐만 아니라 단백질의 좋은 공급원입니다. 엠머 파로 100g에 들어 있는 단백질의 양은 12.77g으로, 단백질 하루 권장 섭취량의 약 25%에 해당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한 ‘2020 한국인 영양소 섭취 기준’에 제시된 성인 남성의 단백질 하루 권장 섭취량은 60~65g이며, 성인 여성의 단백질 하루 권장 섭취량은 50~55g입니다. 단백질은 우리 몸에서 아미노산으로 분해돼 다양한 작용으로 건강 유지를 돕는 성분으로, 반드시 섭취해야 합니다.

파로

3 항산화제 함량이 많은 곡물입니다.

파로에는 루테인 제아잔틴 등의 카로티노이드와 폴리페놀 등 다양한 항산화제가 들어 있습니다. 항산화제는 이름 그대로 ‘산화를 억제하는 성분’으로, 우리 몸에서 산화를 일으키는 물질을 제거해 세포 변질을 막고 염증을 제거하는 등 다양한 작용으로 건강을 지킵니다.

4 심혈관 질환 예방을 도울 수 있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심장 질환 발병 위험을 낮추고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을 낮출 수 있습니다. 특히 엠머 파로 같은 곡물 섬유질 섭취량이 많을수록 위험도가 낮았답니다.

5 혈당 조절을 도울 수 있습니다.

당뇨병 환자에게 권하는 음식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섬유질 함량이 많은 통곡물입니다. 통곡물에 들어 있는 섬유질은 혈당 스파이크를 막는 등 혈당 조절을 도울 수 있습니다. 물론 섬유질은 과일과 채소도 들어 있지만, 과일과 채소의 섬유질은 혈당 조절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답니다.

6 혈중 콜레스테롤 조절을 도울 수 있습니다.

지질의 일종인 콜레스테롤은 세포막을 구성하고 호르몬을 생성하며 비타민D 합성을 돕는 등 우리 몸에서 중요한 작용을 하는 성분입니다. 하지만 저밀도 지질단백질(LDL)에 쌓여 혈류를 타고 세포로 이동하다가 혈관벽에 플라크를 형성해 심혈관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섬유질은 혈중 콜레스테롤 조절하는 작용이 있습니다.

7 프리바이오틱스로 작용해 장 건강을 도울 수 있습니다.

장에는 위에서 내려온 음식물을 분해하고 영양소 흡수를 돕는 등 우리 몸에 필요한 작용을 하는 박테리아가 있는데, 이를 프로바이오틱스라 하고, 프로바이오틱스의 먹이를 프리바이오틱스라 합니다. 섬유질은 위에서 소화되지 않고 장으로 내려가는데, 프리바이오틱스로 작용해 유익균의 배양을 돕고 결과적으로 장 건강과 영양분 소화 흡수율을 높이게 됩니다.

8 포만감을 높여 체중 조절을 도울 수 있습니다.

섬유질은 포만감을 높이고 오래 지속하는 작용이 있습니다. 이렇게 포만감이 높은 음식은 간식 등 추가 섭취를 막아 체중 조절을 도울 수 있습니다. 비만은 만병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질병입니다. 엠마 파로처럼 섬유질 함량이 많은 통곡물이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9 비건 식단에 좋습니다.

통곡물 파로는 단백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습니다. 요즘 건강이나 다른 이유로 비건 식단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비건 식단의 단점 중 하나가 단백질 부족인데, 파로처럼 단백질이 풍부한 곡물을 주식으로 하면 균형 잡힌 비건 식단이 될 것입니다.

이 외에도 통곡물 파로에는 철분과 니아신 등 여러 영양소가 들어 있습니다. 이들 성분이 모두 건강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파로는 곡물이지 약이 아닙니다. 어느날 한 번 먹는 것으로 효과를 말할 수 없으며, 날마다 챙기는 식생활이 될 때 그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식단에 파로(Farro) 추가하기

파로는 맛이 구수하고 식감이 쫄깃해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 곡물입니다. 건강에 좋고 특별한 곡물을 찾고 있다면 파로를 선택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통곡물, 펄드, 세미 펄드

파로는 대개 세 가지 형태입니다. 하나는 통곡물 파로이고, 다른 하나는 어느 정도 도정 과정을 거친 파로이며, 나머지 하나는 도정 과정을 모두 거친 파로입니다. 도정 과정을 영어로 ‘펄드(pearled)’라 하는데, 굳이 우리말로 옮기면 ‘진주화’가 될 것입니다. 포장에 ‘펄드’ 또는 ‘진주’라는 단어가 있으면 도정 과정을 거친 파로이고, ‘세미 펄드’ 또는 ‘반진주’라는 단어가 있으면 반쯤 도정 과정을 거친 파로이며, ‘통곡물’이라는 단어가 있으면 도정 과정을 거치지 않은 파로입니다. 도정은 밀기울을 깎아내는 과정으로, 이 과정에서 상당량의 섬유질과 영양소가 사라집니다. 셋 중 건강에 가장 좋은 것은 ‘통곡물 파로’지만, 먹기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준비와 요리

통곡물 파로는 딱딱합니다. 조리 시간을 줄이려면 밤새 물에 담가두는 것이 좋습니다. 세미펄드 파로펄드 파로는 밤새 담가두지 않아도 되지만, 어느 정도 미리 담가두는 것이 좋습니다.

파로 요리는 다양합니다. 오트밀처럼 우유나 요거트와 함께 먹어도 좋고, 퀴노아 샐러드처럼 샐러드를 만들어도 좋으며, 스튜나 수프에 넣어도 좋습니다. 이탈리아 전통 음식인 리조또에 쌀 대신 파로를 넣어조 좋습니다. 물론, 미리 불려서 잡곡밥을 짓듯 밥을 지을 때 넣어도 좋습니다.

파로

주의 사항

요즘 ‘글루텐프리(Gluten-free) 음식’을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글루텐은 밀이나 보리 등에 들어 있는 불용성 단백질로, 쫄깃한 식감이 바로 글루텐으로 인한 것입니다. 하지만 글루텐 분해 효소가 부족하거나 과민증이 있는 사람은 글루텐이 든 음식을 먹으면 복통 소화불량 알러지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밀의 일종인 파로에는 글루텐이 들어 있어서, 글루텐 관련 문제가 있다면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파로는 섬유질 함량이 매우 많은 곡물입니다. 섬유질은 우리 몸에서 다양한 작용으로 건강을 돕지만, 평소 섬유질 섭취량이 적었다면 파로 섭취 후 소화 관련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섭취량을 조절하는 것이 좋고, 물을 많이 마시면 도움 됩니다.

건강에 좋은 음식

우리는 건강하게 살기 위해 음식을 먹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그 음식이 우리를 아프게 하기도 합니다. 불량 식품처럼 건강을 해치는 성분이 들어 있는 음식이라서 그렇기도 하고, 잘못된 식습관 때문에 그렇기도 합니다. ‘을사오적’에 빗대 말하는 ‘건강오적 백식 식품’도 사실 나쁜 음식이 아닙니다. 맛을 좋게 하고 식감을 좋게 하려고 정제한 것이고, 맛있고 식감도 좋다 보니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인 것이니까요. 소금도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성분인데,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입니다. 건강에 좋은 음식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적절하게 선택하는 우리의 지혜가 음식을 좋은 음식으로 만듭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