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밥은 오랜 세월 건강밥으로 알려져왔고 보건 당국에서도 적극 권장해왔습니다. 벼를 도정할 때 다 벗겨내지 않은 속겨에 섬유질과 비타민 등 우리 몸에 좋은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그런 상식을 깨는 글들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건강에 좋다고 알고 있던 바로 그 물질이 건강에 해로운 ‘항영양소(Antinutrients)’여서 먹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항영양소(Antinutrients)가 무엇이기에 그럴까요? 정말 현미는 건강에 나쁜 곡물일까요? 항영양소(Antinutrients)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봅니다.
오늘 알아볼 내용
영양소(Nutrients)와 항영양소(Antinutrients)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영양소’는 우리 몸에서 ‘에너지원으로 쓰이거나 생리 기능을 조절하는 물질’입니다.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성분을 ‘주영양소’라 하고 생리기능 조절에 쓰이는 성분을 ‘부영양소’라 합니다. 우리는 음식을 통해 이들 영양소를 섭취해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갑니다.
- 주영양소: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성분으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 주영양소에 해당합니다. 많은 양이 필요해 ‘다량 영양소’라 부르고, 3가지여서 ‘3대 영양소’라 부르기도 합니다.
- 부영양소: 생리 기능 조절에 쓰이는 성분으로 미네랄(무기질)과 비타민이 부영양소에 해당합니다. 필요량이 적어 ‘미량 영양소’라 부르고, 3종의 주영양소에 더해 ‘5대 영양소’라 부릅니다. 미네랄(무기질)에는 10여 종이 있고, 비타민에는 총 13종비타민에는 총 13종이 있습니다.
영양소는 모두 우리 몸에 필요한 성분입니다. 필요량이 많은 성분이라고 해서 더 중요하고 필요량이 적은 성분이라고 해서 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큰 기계도 아주 작은 톱니바퀴 하나가 빠져나가면 작동하지 못하는 것처럼, 각각의 영양소도 저마다 고유의 기능이 있어서 부족하면 그에 따른 문제가 일어납니다. 영양소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함께 보면 좋은 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항영양소(Antinutrients)
‘항영양소(Antinutrients)’는 이름 그대로 ‘영양소(nutrients)’에 ‘대항하는(anti)’ 물질입니다. 음식 자체에 들어 있는 물질이지만 우리 몸에 이들 물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없어서 소화하지 못해 소화기관을 통해 배출되는 데, 그 과정에서 특정 미네랄과 결합해 해당 미네랄의 흡수율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우리 몸에 쌓여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주요 항영양소(Antinutrients)
아래는 널리 알려진 항영양소입니다. 미국 등 유수 의료원과 건강 관련 기관에서 발행한 연구 자료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 피트산(피틴산, phytic acid): 통곡물, 견과류, 씨앗류, 콩류 등 곡물(씨앗)의 껍질에 많은 성분으로 칼슘, 아연, 마그네슘, 철분 등의 흡수율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현미의 누런 껍질(쌀겨)에 다량 들어 있어서 유해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우리 몸에서 항산화제로 작용하는 성분이기도 합니다.
- 렉틴(lectin): 통곡물과 콩류에 다량 들어 있는 성분으로 칼슘, 아연, 인, 마그네슘 등의 흡수율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우리 몸에서 항산화제로 작용하는 성분입니다.
- 옥살산(oxalic acid): 시금치, 죽순, 파슬리, 셀러리, 비트, 강낭콩 등에 많이 들어 있는 성분입니다. 칼슘과 결합해 칼슘 흡수율을 떨어뜨리고 요로결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 타닌(탄닌, tannin): 녹차, 커피, 콩류 등에 많이 들어 있는 성분으로 철분의 흡수율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녹차의 떫은맛이 바로 그 성분 때문인데, 우리 몸에서 항산화제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 사포닌(saponin): 콩류, 통곡물 등에 많이 들어 있는 ‘쓴맛’ 성분으로 철분과 아연 등 정상적인 영양분의 흡수율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인삼(홍삼)에 들어 있는 ‘진세노이드’가 바로 사포닌의 일종이며, 두릅에 들어 있는 ‘트리테르페노이드’도 사포닌의 일종입니다. 모두 우리 몸에서 항산화제로 작용합니다.
- 글루코시놀레이트(glucosinolate): 브로콜리, 양배추, 케일 등 십자화과 채소에 많이 들어 있는 성분으로, 요오드(아이오딘)의 흡수율을 떨어뜨려 갑상선 기능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에서 항암 항염증 등 항산화제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약 또는 독
‘용량이 독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독성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파라켈수스(Paracelsus, 1493~1541)’가 남긴 말로, 약과 독은 투여량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항영양소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영양소가 영양소 흡수를 저해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성분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식물의 자기 보호
우리는 무기력한 것을 ‘식물’에 빗대 말하기도 하지만, 식물도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하고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습니다. 가시나 털과 같은 기계적인 무기도 있고, 향이나 맛 또는 독성 물질 같은 화학적인 무기도 있습니다. 덜 익은 과일의 시고 떫은 맛도 식물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식이고, 우리가 항산화제라고 부르는 식물화학물질도 식물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물질입니다. 먹었을 때 불편하게 하거나 위험하게 해서 자신을 먹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항영양소도 그런 물질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양소 흡수를 방해하는 ‘나쁜 물질’로 작용하지만, 그런 작용이 식물 자신을 보호하는 데는 유익한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영양소를 거북해하는 것만 봐도 식물의 그런 자기 보호 방식이 효과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항영양소 대부분은 우리 몸에서 항산화제로 작용해 건강을 돕기도 합니다.
몇 년 전, 현미에 피트산(피틴산, phytic acid)이 있어 건강에 해롭다는 주장이 퍼졌던 적이 있습니다. 피트산(피틴산)이 칼슘, 마그네슘, 아연, 철분 등의 체내 흡수를 막는 항영양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피트산(피틴산)의 작용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피트산(피틴산)은 우리 몸에서 암세포의 증식을 막고 혈당을 낮추는 등 항산화제로도 작용하는 물질이니까요. 더군다나 현미는 피트산(피틴산)만 들어 있는 ‘피트산(피틴산) 보충제’가 아니라 우리 몸에 필요한 다양한 영양소가 들어 있는 식품입니다. 유해 성분만 있거나 유해 성분이 압도적으로 많아 치명적이라면 문제지만, 우리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이고 다른 좋은 성분도 많다면 달리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얼마나 어떻게
지금까지 인류가 축적해 온 음식문화는 바로 이런 물질을 다뤄온 역사입니다. 무침나물로도 좋고 국거리로도 좋고 김밥에도 필수 재료인 ‘국민 채소 시금치’에 들어 있는 항영양소 옥살산도 그 자체로는 먹으면 치명적인 독소입니다. 하지만 시금치에 옥살산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비타민과 미네랄 등 우리 몸에 좋은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미국 유명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시금치를 슈퍼푸드 목록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양에 있고, 처리 방법에 있습니다.
[문제는 양]
현미에 많이 들어 있어서 위험하다는 피트산(피틴산)은 수용성 물질입니다. 밥을 짓기 전에 물에 충분히 불리거나 발아시키는 것으로 그 양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습니다. 시금치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독성물질 옥살산도 수용성 물질이고 열에 약해, 뜨거운 물에 데치는 것으로 그 양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암을 유발하는 독성 물질 때문에 먹지 않는 고사리도 뜨거운 물에 삶아 물기를 빼면 그 독성이 제거됩니다. 음식문화는 바로 이런 선별 과정과 처리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종합예술 음식
요리는 종합예술입니다. 다양한 선별 과정과 처리 과정을 거친 재료들이 어우러져 완성됩니다. 어느 식품에 들어 있는 항영양소가 특정 성분의 흡수율을 떨어뜨린다면 해당 성분 함량이 많은 다른 식품을 함께 먹어 보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특정 성분이 너무 많아 문제인 식품이 있다면 그 성분의 흡수율을 떨어뜨리는 항영양제가 든 식품을 함께 먹어 흡수율을 낮출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먹는 음식은 다양한 식재료와 수많은 성분이 어우러져 만들어집니다. 건강을 위해 골고루 먹으라는 것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정리합니다. 건강에 문제가 없고 일반적인 식단과 조리 방법을 따른다면 항영양소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축적돼 내려온 일반적인 조리 과정에서 해당 성분의 함량이 현저하게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항영양소 대부분은 우리 몸에서 강력한 항산화제로 작용해 건강을 돕는 성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해당 성분과 관련한 건강상의 문제가 있다면 주의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참고 자료
- BMC: Plant food anti-nutritional factors and their reduction strategies: an overview
- frontiers: A review on anti-nutritional factors: unraveling the natural gateways to human health
- Harvard School of Public Health: Are Anti-Nutrients Harmful?
- Journal of Functional Foods: Antinutrients: Lectins, goitrogens, phytates and oxalates, friends or foe?
- Nutrients: Is There Such a Thing as “Anti-Nutrients”? A Narrative Review of Perceived Problematic Plant Compounds
- Tufts University: Don’t Fear Anti-nutrients